1993년 한 세대를 위한 주말 별장 계획
Portfolio 1993/11/01 23:52
트레이싱 페이퍼 위 잉크, 종이 모델
병마와 싸우면서 만들어낸 역작(-_- 죄송합니다).
20세기 최후의 병 '수두'와 싸우며, 수업에 나가지 못하는 걸 한탄하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펜과 T자를 붙잡고 만들어 냈다. 이때 같이 만들었던 모델은 최고의 디테일을 자랑했었으나 지붕이 완성되지 못했던 관계로 설계실의 쓰레기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사진도 없이. 모델은 1/50이었고 벽체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창틀, 심지어 미장공사까지 되어 있었다.
집에서 혼자 틀어박혀 작업한 관계로 작품성은 거의 제로Zero에 가깝다.
이건 요즘 눈높은 집장사들은 사가지도 않을 듯하다. 거의 이름없는 산장의 방갈로 수준.
하지만, 엄청난 양의 잉크를 사용하여 손으로 그려낸 내 마지막 작업이었기에, 너무나 정이 간다.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지금 다시 그리라고 해도 저 많은 선들을 그려내지 못할 것 같다.
톤지를 사러밖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얼굴이 거의 해삼 수준이었음) 0.1mm 로트링으로 모든 톤을 직접 그렸다. (바부 - -;)
틀어 박혔다가 짠!하고 도면을 들고 나갔던 임팩트 때문에 당시에 지도교수님이었던 장림종 교수님(현재 연대에 계신다.)은 아직도 나를 보면 피식피식 웃으시며 반갑워하신다.
병은 작업을 하기 한달 쯤 전에 수두를 앓던 막내에게 뽀뽀를 했다가 걸렸는데 그 사실이 조아줌마의 입을 통하여 멀리 이대 모과에 쫙 퍼져서 엄청나게 X을 팔기도 했다. 행여나 수두 걸린 꼬마가 불쌍하다고 뽀뽀하지 마시길. 수두의 면역성은 사라질 수 있답니다. 수두에 걸렸다고 갈구던 모내과 의사선생님의 번질번질한 얼굴이 생각난다. 데길. 여하튼, 병마가 나를 집에 가두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무식한(!) 도면들 이었다. 고마운 수두 T.T
